2023년 제14회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선택한 이유는 어떤 글이 잘 쓰인 글인지 알고 싶었고, 이 시대의 세태나 흐름을 알고 싶어서였다. 지금까지 읽거나 보아왔던 어떤 틀을 깨 주면 좋겠다는 기대감도 가졌다.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을 읽으면서 고모, 목경, 무경 세 여성이 빨간 남방과 파란 남방이라 불리는 남자 둘을 숲에서 만나게 되는데 모닥불을 피워 밤을 같이 새우게 되는 일이 생겨버린다. 뭔가 뻔한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기를 바랐다.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비참한 내용들이 명작에는 꼭 들어가게 마련인 점이 나는 싫다.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순서대로 스토리가 전개되지 않는다. 몇 년 후의 고모의 사망이야기를 짧게 언급하고 다음날 아침 무경이 총을 가지고 나타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밤새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독자가 나름의 이야기를 연결 짓도록 하고 있는 것 같다. 친절하게 과정을 글에 설명하지 않고 독자가 엄청나게 상상하게 만드는 것 같다.
스토리를 요약해 보자면
1. 목경이 카페에서 큰소리로 대화하는 두 자매이자 작가의 대화가 들려서 듣게 된다. 동생은 자신의 소설에 큰 한방이 없다고 말한다. 두 여자 외에 세 번째 여자는 대화에 관심이 없이 자신의 물건만 빤히 쳐다보고 있다. 동생 작가는 소설에 '한 방'을 못 치기도 하지만 안 치고 싶다고 말한다. 이유는 그 한 방을 위해 소설에 쓴 모든 문장이 불쌍해서라고 말한다.
동생 작가의 이런 성향이 이 단편소설에 그대로 드러난다. 이 소설에는 어떤 클라이맥스나 글의 한 가지 요소인 "절정"이라는 단계가 없는 듯하다.
2.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는 목경은 상중이다. 이 글의 주요 인물인 고모가 죽었고 고모가 어떤 사람인지 설명하는 부분이 나온다. 그리고는 제목처럼 모래고모와 목경, 무경의 모험이 시작된다.
고모는 집안에 으레 있는 사고뭉치였다. 결혼 안 한 고모이기도 한 환영받지 못한 막내딸이다. 한때 고모는 목경이 집에서 살았는데 목경의 할머니는 아귀가 맞는 것처럼 시기가 잘 맞는다고 하면서 고모의 가출이 목경의 가족에게뿐만 아니라 고모 자신에게도 이득이라고 생각했다. 당시 목경의 아버지는 직장에서 늦게 퇴근하고 어머니는 밤까지 무언가를 배우러 다녔다. 목경과 무경은 부모의 가정에 대한 이런 권태기가 오면 행복해했다. 제한받던 프로그램을 밤늦게 까지 마음껏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모는 목경과 잘 놀아주었다. 반면 무경은 사람보다 책을 좋아했다. 고모의 관심이 자신이 아닌 무경에게 향할 때 목경은 갑자기 배가 아프고 고모의 관심을 제 쪽으로 옭아매고 싶었다.
한 겨울 세 사람이 시골로 짧은 여행을 갔을 때 목경이 염려하던 일이 생겼다. 고모와 '츄츄'라 불리는 고모의 엽총. 무경, 목경은 고모가 사냥을 하러 간 사이에 무덤가에서 기다리는 동안 무경은 버섯도감을 펴서 읽고 무경은 무덤을 지나는 사람들 쳐다보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사냥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고모는 총을 잃어버린다. 총을 반납할 시간이 되었는데 잃어버린 것이다. 도랑에서 만난 두 남자에게 도움을 청한다. 그 둘은 도랑에서 쓰러진 멧돼지를 총을 쏴 잡고 있었다. 그 남자들은"총을 찾아주면 뭘 해주겠냐?" 며 놀아달라고 넉살 좋게 반문한다. 그 빨간 남방과 파란 남방 두 남자는 밤이 되어 너무 어두우니 다음날 날이 밝으면 찾아주겠다고 하며 모닥불을 피워 밤을 같이 새운다. 무경과 목경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빨간 남방 남자는 낮에 겪었던 여성분과의 일을 얘기한다. 산에 데이트를 왔다가 사냥하는 줄 몰랐던 여자는 차를 타고 떠나버렸다. 남자들은 왜 자신들이 고모 총 찾는 일을 도와야 하는지 자신들에게 기쁨을 주지도 않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3. 고모의 사망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진다. 고모는 연고가 없는 작은 종교 공동체에서 죽었다. 친척들이 그녀의 장례식을 준비한다. 이야기는 다음날 아침 무경이 아파트 단지에서 나타난 것으로 연결된다. 밤새 그 남자와 고모, 목경의 사이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내용은 없다. 총을 반납하고 고모, 목경, 무경은 다시 택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다. 목경 생각에는 무경이 고모에게 호되게 맞을 줄 알았지만 고모는 무경에게 "내 딸"이라는 말을 한다. 무경은 고모가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을 자신이 했다고 말한다. 목경은 고모를 뺏기지 않으려 열이난 다고 말한다.
4. 41쪽 "할 순 있지만 정말 하기 싫은 일. 때려죽여도 하기 싫은 일. 실은 너무 두려운 일. 왜 할 수 없는 일보다 할 수 있다고 믿는 일이 사람에게 더욱 수치심을 안겨주는 것일까. 무경은 그 일을 해주었다."
이 단편 소설의 마지막이다. 세 여자 중에 짐을 잔뜩 가지고 떠났던 다른 여자를 기다리며 동생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단편소설에서 결정적인 순간을 만든다는 것은 어떤 한 포인트를 융기시킨다는 것을 의미해요. 그 불쑥 솟은 한순간 아래 모든 문장과 장면이 깔리게 되는 거죠. 좀 비민주적이지 않아요? "
고모를 사랑했던 것은 목경인데 고모가 죽기 직전 떠올릴 한순간이 언니와의 기억을 택했을 것이란 사실에 목경은 분하게 여긴다.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목욕탕이다. 고모, 무경, 목경은 탕 안에 있다. 어떤 엄마와 아이도 탕에 있는데 장애가 있는 그 아이는 코를 풀어 탕 속에 비볐다. 다른 사람들이 탕을 나가기 시작한다. 목경도 탕에서 나왔다. 그러나 뒤에 아무도 없다. 무경과 고모는 그대로 그 엄마와 아이와 함께 탕 속에 남아 있었다.
마치며
이 소설의 첫 장면에 등장한 옆테이블의 세 여자는 고모, 목경, 무경 세 여자와 숫자가 같다. 테이블의 세 명 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목경이는 고모의 상중이고, 고모의 장례식에 관한 한 사소한 일부터 굵직한 일까지 도맡아 하고 있다. 무경이에 대한 이야기는 처음과 끝에 없다. 모험 이야기에만 등장한다. 마치 테이블의 세 번째 여자가 물건을 잔뜩 지고 사라진 후 등장하지 않은 것처럼 말이다. 모험이야기에만 등장하는 무경이가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경이는 이 모험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그리고 고모에 대한 그녀의 생각은? 목경이가 생각한 것처럼 고모는 무경이를 더 좋아했을까? "내 딸"이라는 말을 듣지 못했다고 해서 정말 무경이를 더 좋아한 걸까? '내 딸'이라고 불린 무경이는 그 상황을 질투하는 목경이만큼이나 그 상황을 좋아했을까?
어쨌든 밤새 아무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중간 부분을 독자의 상상에 맡긴 부분이 좋았다. 세상에는 잔인하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사건 사고 소식이 연일 미디어와 인터넷상에 차고 넘친다. 그것이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좋기 때문일 것이고 그것이 돈이 되는 세상이기 때문 일 것이다. 또는 악한 사람들이 사람들의 주의를 흩트려 자신들의 이기적인 목적을 이루려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작가의 말처럼 어떤 한 방을 위해 희생되는 다른 글들이 불쌍해지지 않도록 한 글의 전개 방식이 맘에 든다. 모든 사람들은 공평한 기회와 대우를 받을 권리가 있다는 말을 좋아하는 나의 생각이 옳다고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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